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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대 대원들과 군마 레클리스
작성자 : 세계밀리터리룩페스티벌(test@test.com) 작성일 : 2019-03-17 조회수 : 105 추천:31
파일첨부 : 625-7.jpg

한국전 당시 전선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에 이름이 레클리스라는 몽고종 암말인 군마가 있었다.


이 군마는 6.25 동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로 트랙을 누볐던 말로서 한국명은 '아침해'였다.

그러나 1950년 6월25일 새벽 38선을 넘어 남침해 내려온 북한 공산군대가 일으킨

6.25동란 한국 전쟁과 함께 '아침해'의 운명도 바뀌게 된다.

산악지역이 많은 한국에서 탄약공급에 어려움을 겪던 미 해병 1사단 5연대

무반동화기 소대의 에릭 페더슨 중위가 1952년 10월 250달러에 '아침해'를 군마로 구입했다.

미 국방부는 이 때를 아예 '아침해'의 미군 입대일로 기록했다.
'아침해'는 최전선의 해병대원들에게 탄약과 포탄을 나르는 임무를 수행했다.
해병대원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Reckless)' 임무를 수행한

아침해에게 '레클리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레클리스는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53년 3월 미 해병과 중공군 120사단이 맞붙은

'연천전투(네바다 전투)'를 포함해 레클리스는 전장터의 보급기지와

최전방 고지를 386회나 왕복하며 탄약 수백 톤을 날랐다.

국방부는 장병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레클리스를 정전협정후 미국으로 데려갔다.

또한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레클리스에게 전투중 부상당한 군인에게 주는 '

퍼플 하트' 훈장은 물론, 미 대통령 표창장·국방부 종군기장을 수여했다.
또한 1959년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하사관으로 진급시킨 후 근무 기장인 선행장도 수여했다.
1960년 성대한 전역식을 가진 레클리스가 1968년 죽자

미 해병대는 정식 장례식을 치르는 등 마지막까지 최대한 예우를 했다.

[사진설명] 날개 없는 천사들 재단 대표 로빈 허튼과 제임스 에이머스 해병대 사령관과

여성조각가 조슬린 러셀 - 2013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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